[2022년/말레이시아 파견] 기회가 오면 그냥 발을 내딛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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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캠퍼스아시아플러스 | 작성일 | 23-03-30 16:09 | ||
2022년 6월 24일. 교원대학교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한국교원대학교 캠퍼스 아시아 플러스 사업단입니다. 우리 대학의 캠퍼스 아시아 플러스 사업단에서 2022년도 2학기 교환학생을 선발하고자 합니다.” 교환학생을 선발? 교환학생이라고? 학교에서 오는 많은 안내문자가 있었지만, 이 문자는 보고 또 보고 또 읽어보게 되었다.
나는 십일 년 간 고등학교 물리교사로 재직하였고, 배움의 갈증을 느껴 현재 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 과학영재교육 전공으로 파견교사로 있던 중이었다. 첫 학기 마지막 과제를 제출하던 날 받은 무심코 본 이 문자에, 내 가슴은 주책없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늦공부에 빠져 배움의 즐거움에 흠뻑 젖어 있던 나에게, 새로운 나라에서의 새로운 공부는 또 얼마나 즐거울 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서류를 작성하여 지원하기까지는 많은 고민이 있었다. 나는 결혼 육 년차 주부였으며, 고등학교 윤리교사인 남편의 아내였고, 또한 다섯 살 여자아이의 엄마였기 때문이다. 현재 휴직 후 동 대학원에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남편의 공부를 방해하는 것 같아 걱정이 되었고, 특히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섯 살 아이와 해외에 나간다는 것은 나의 헛된 바람인 것만 같았다.
오랜 고민 끝에 남편에게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은 내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여보,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거야. 우리 하고 싶은 거 같이 하면서 살자.” 아이도 뭘 아는지 마냥 좋다고 했다. 지도교수님께서도 내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넓은 세상에서 많이 보고 잘 배우고 오라는 든든한 말씀도 해주셨다.
서류를 작성하고 제출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던 것 같다. 나는 연계된 일본,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대학 중에서 말레이시아 공과대학교(이하 UTM)를 선택했다. 이유는 첫 번째로, 말레이시아는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부분에서 가장 큰 매력을 느꼈다. 두 번째로, 과학교사로서 사범대학과는 차별화된 공과대학만의 고유한 커리큘럼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세 번째로 공과대학의 전문화된 실험실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대학원 파견이 끝나면 현장으로 돌아가 고등학생들에게 지금보다 발전된 더 좋은 수업을 해줄 수 있어야 하기에, 나의 전문성을 기르는 학교로는 UTM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되었다.
서류 제출 후, 면접까지 떨리는 설레는 나날들이 지나고, 마침내 “2022 CAMPUS Asia Plus 교환학생 프로그램 최종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문자를 받았다. 나는 남편과 딸아이 손을 잡고 펄쩍펄쩍 뛰었다.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9월부터 수업은 시작되었다. Step1의 수업은 재학 중인 한국의 교원대에서 시작되었다. 한 달 동안 아시아 플러스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에 필요한 여러 분야에 관해 일곱 명의 학우들과 함께 공부했다. 해외 수업을 수강할 수 있는 영어 역량에 관한 수업이 가장 핵심이었으며, 해당 나라의 문화와 교육에 관한 내용도 짧지만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말레이시아 교환학생은 나 혼자였기에 더욱 열심히 했던 것 같다.
9월 27일, 10월부터 바로 수업도 듣고 아이 유치원 적응도 시키기 위해 며칠 앞당겨 말레이시아의 수도인 쿠알라룸푸르로 출국했다. 나는 쿠알라룸프르에 위치한 UTM의 분교인 UTMKL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나의 숙소는 UTMKL안에 위치한 UTMKL Residence였다. 레지던스는 총 네 개의 동이 있었으며 나는 Tower1의 투 베드룸을 배정받았다. 주방도 있고, 거실도 있었으며 두 개의 방 창문으로는 넓은 잔디 운동장과 학교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레지던스는 학생들이 주로 머물고 있어서인지 늘 생기가 넘쳤으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마주치는 학생들은 우리 가족을 볼 때마다 항상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로 인사해주었다. 덕분에 말레이시아는 친절했고, 따뜻했던 좋은 기억만 남은 것 같다.
이역만리로 떠나는 우리에게 믿을 구석은, 아시아 플러스 프로그램의 말레이시아 슈퍼바이저인 Dr. Roshafima 교수님과 코디네이터 Dr. Ruwaida 뿐이었다. 이들은 출국 전부터 기숙사 예약 및 각종 제출 서류 작성을 도와주며, 가족들과 함께 타지에 가야하는 나에게 버팀목이 되었다. 도착한 다음 날인 9월 28일 아침이 되자마자 이 두 분을 만났다. 이들의 도움으로 대학본부에 찾아가 담당자와 함께 학교 등록 절차를 완료했다. 사진도 찍고 학생증도 만들었으며 가방 및 학용품들도 선물로 받았다.
히잡을 쓰고 있었던 두 분은 영어가 유창했으며 매우 친절했다. 학교 곳곳을 소개해 주며 대화를 나누었다. 특히 이슬람 국가에서 외국인이 실수할 수 있는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 많은 팁을 주었다. 예를 들어 도서관 및 수업에 참석할 때엔 카라가 있는 긴 팔 셔츠에 발목이 보이지 않는 긴 하의를 입어야 하며, 슬리퍼 대신 꼭 운동화를 신어야 했다. 낯선 타지에서 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든든한 일이었다. 학교에서 곤란한 문제가 생기면 Ruwaida 교수님이 흔쾌히 해결해 주셨고, Dr. Ruwaida는 수업과 생활 전반에 관련된 모든 일에서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K드라마를 좋아하는 Roshafima 교수님, 네 아이의 엄마인 Dr. Ruwaida, 보고 싶습니다!!
나는 6학점의 현지 수업을 수강했다. 하나는 화요일 오전 10시, MMJS1143 Environmental Impact Assessment 이었고, 다른 하나는 금요일 오전 9시, MMJS1133 Sustainable Management and Policy이었다.
첫 수업 날, 땀을 뻘뻘 흘리며 강의실을 찾아가던 중 한 여학생에게 나에게 말을 걸며 도움을 주었다. 마침 자신도 같은 수업을 듣게 되었다며 함께 가자고 한 이 친구는, K드라마와 Kpop을 좋아하며 BTS의 팬인 Syafiqa이었다. 그녀는 말레이시아에서의 나의 첫 친구이자 두 수업 모두 같은 그룹의 멤버가 되었다. Shafiqa는 Whatsapp 으로 먼저 연락해주었고, 수업과 과제에 관련하여 어려운 점이 있을 때엔 많은 도움을 주었다.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었으며, 특이하게도 말레이시아, 일본, 중국, 나이지리아, 한국 등의 다양한 수강생들이 모여 있었다. 매 수업마다 개인과제 또는 그룹과제가 있었으며, 그룹 토론 및 발표 수업이 주를 이루었다. 그룹토론과 그룹과제를 할 때엔 먼저 Whatsapp 그룹채팅으로 모임 시간을 정했으며, 구글 화상회의로 만나 과제의 방향에 대해 의논했다. 구글 슬라이드를 공유하여 각자 자신이 맡은 부분을 성실하게 작성하면 어느새 하나의 프레젠테이션이 완성되었다. 내가 학생들을 데리고 그룹수업을 할 때 늘 걱정했던 무임승차는 여기에서 찾아볼 수 없었으며 모두가 자신이 맡은 부분을 최대한으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 역시 우리 그룹 친구들에게 피해가 될까봐 더욱 열심히 하게 된 것 같았다.
다양한 나라의 학생들과의 수업은 한국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특별함이 있었다. 특히 가장 인상적이었던 수업은, MMJS1143 EIA 수업에서 환경영향평가를 하기 전 사회적 요인에 의해 평가에 어려움이 있었던 예를 발표하는 것이었다. 다양한 나라의 학생들이 있다 보니, 각 나라에서의 주요 사건 들이 소개되어 매우 흥미로웠다. 나는 우리나라의 롯데월드타워 건설 중 대립, 레고랜드 공사 중 고대유물 발견, 천성산 터널 사건 등을 소개했고, Dr. Halim 교수님께도 다른 나라 친구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
외부 강사와 함께하는 Online Global Classroom 학회 참여도 흥미로웠다.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주제로 Dr. Wesam Al Madhoun 교수님의 강의가 있었으며, 다양한 나라의 학생들이 자신의 나라 상황에 맞는 예를 질문하고 이에 따라 서로 토론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타국에 계신 교수님이라 온라인으로 이루어졌는데도 활발한 질의응답과 토론이 이루어짐에 학생들과 교수님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사범대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실험들을 가까이서 함께 할 수 있었다. 특히 화학공학 학생들과 함께 했던 실험이 기억에 남는다. 유독한 물질이 묻을 수 있기에 가운, 보안경, 마스크, 실험용 장갑까지 착용한 후에야 실험에 함께 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실험한 결과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을 함께 하였으며, 사용한 기구들 및 시료들의 폐기물 처리가 잘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수업이 없고 과제로부터 자유로운 날에는 남편과 함께 국립박물관, 주석박물관, 페트로나 과학관, 트윈타워, 국립 예술관, 독립기념광장 등을 견학했다. 주말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말라카에도 다녀왔다. 네덜란드 식민 시절에 지어진 교회와 해상 모스크, 요새, 왕궁 박물관도 볼 수 있다. 말레이시아의 주요 관광지에는 입장료의 종류가 두 가지이다. 비말레이시아인은 말레이시아인 요금의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나기도 한다. 나는 가끔 UTM 학생증으로 말레이시아인 요금을 내기도 했으며, 비자가 없으면 학생증이 있어도 비말레이시아인 요금을 내야 한다는 곳도 많았다.
레지던스에서는 매일 새벽 모스크에서 기도하는 소리가 들렸으며, 방 천장에는 화살표 스티커가 붙어있다. 말레이시아 어느 곳을 여행하더라도 항상 방 천장에는 방향을 나타내는 스티커가 있었으며 이 방향이 기도를 하는 메카의 방향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학교 내에서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히잡을 쓰고 있었으나, 시내에만 나가도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들이 많았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교에서는 히잡을 쓰지만 종교의 자유도 인정한다고 한다.
프로그램 기간 중 말레이시아에서는 중요한 선거가 있었다. 선거가 끝난 후 지나가다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검지가 검게 물들어 있었는데, 중복선거를 피하기 위해 물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약 일주일간 지워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라를 위해 투표를 했다는 자랑스러운 인증이 되기도 한다고 하였다. 선거가 끝난 후 있었던 수업에서는 교수님 손가락에서도 친구들 손가락에서도 검은 잉크를 볼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지만 10월 말 인도 힌두교 축제인 디파발리 축제도 나라의 큰 행사였으며, 12월은 길거리와 쇼핑몰 등등 어디를 가나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도 꾸며져 있었다. 다양한 종교를 존중해주고 함께 즐기는 무슬림들을 볼 수 있었다.
무비자 90일이 가능한 말레이시아에서 90일을 꽉 채워 소중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말레이시아에 온 지 90일 째 되는 날인 12월 25일 Dr. Roshafima와 Dr. Ruwaida를 만나 함께 식사를 하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인생에서 이렇게 값진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캠퍼스 아시아 플러스 사업단에 감사하며, 기회를 고민했지만 놓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도록 지지해준 가족들에게도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리고 혹시나 망설이고 있는 학생들이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지금 이순간 나에게 아주 값진 기회가 왔으니 그냥 발을 내딛어라. 도전하고 경험해야 하며, 작은 삶의 변화를 두려워 하지 말고 즐겼으면 좋겠다. 지나고보니 나에게 90일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고 아주 많이 행복했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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